선배시민, 현실 정치를 만나다
- 선배시민협회 창립 마중물에서 현실 정치의 최전선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수홍 부회장
초고령 사회의 도래와 함께 노인을 단순히 ‘보살핌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던 과거의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풍부한 인생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는 주체적인 시민, 즉 ‘선배시민’ 운동이 부각되고 있다. 이 ‘선배시민’ 운동의 중심에는 선배시민협회 창립 준비위원장으로서 협회의 기틀을 만들고, 현재는 조직분과 부회장으로 연대의 일선에 있는 이수홍 부회장이 있다. 그가 지난 6월 3일 지방자치선거에서 서울시 동작구 구의원으로 당선되며 현실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본격적인 의정 활동을 앞둔 2026년 6월 27일, 선배시민의 철학을 품고 현실 정치의 벽을 깨뜨리기 위해 일선에 나선 이수홍 부회장을 만나 그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과 앞으로 펼칠 의정 활동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제미나이 활용 이미지
당선의 기쁨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책임의 무게’
지방선거가 막을 내린 후, 많은 이들이 이수홍 부회장에게 당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좋은 일을 앞두고 잘되었다는 주변의 따뜻한 응원이었지만, 정작 현실 정치에 발을 내딛는 당사자에게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기쁨보다 무거운 심경으로 다가왔다. 이 권력을 어떻게 올바르고 정의롭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쏟아지는 축하의 인사를 받아들이는 소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많은 분이 축하의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좋은 일을 앞두고 잘 됐다'는 응원의 뜻이겠지요. 하지만 현실 정치에 발을 내딛는 저에게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기쁨보다 무거움으로 다가옵니다. 이 권력을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축하의 인사를 '더 막중한 책임을 지라'는 유권자들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당선의 기쁨보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7월 1일 본격적인 의회 출범을 앞두고 그의 일과는 바쁘게 흘러간다. 최근에는 구청의 행정과 조직 체계를 파악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각 부서가 담당하는 업무를 명확히 이해하고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야만, 내년도 사업계획에 주민들과 약속한 공약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구청의 각 부서가 어떤 일을 하고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인수위원회 자문위원들과 함께 열심히 학습하고 있습니다. 구정을 정확히 알아야 내년도 사업 계획과 예산에 우리의 공약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개월간 선거를 준비하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후유증이 적지 않지만, 저를 믿어주신 주민들을 위해 매일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평등’의 가치, 선배시민 운동으로 이어가다
이수홍 부회장은 과거 오랜 기간 노동운동, 실업자 운동, 빈민 운동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몸담으며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가끔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되묻는다는 그는 삶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로 ‘평등 의식’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을 꼽았다.
“돌이켜보면 제 삶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는 '평등 의식'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회적 차별이나 불공정한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정의감이 꿈틀거렸던 것 같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갑작스러운 명예퇴직으로 길거리에 나앉은 실업자들을 위한 '실업 극복 국민운동'에 참여하여 2년 동안 활동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권 안에서 자활센터 운영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평등과 불평등 저항에 바쳐온 그가 ‘선배시민 운동’이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정치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시니어클럽 등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의 실상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정된 예산 때문에 가난한 노인들끼리도 일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모순적인 구조를 목격했다. 가난을 수치로 여기게 만드는 선별적 복지제도의 한계를 처절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가난을 수치로 여기게 만드는 선별적 복지제도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이때 노인 문제를 시혜나 동정의 대상인 '빈곤 해결'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 권리를 가진 '선배시민'의 관점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그것이 선배시민 운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선배시민협회의 뼈대를 세우며 품었던 꿈과 고민

선배시민협회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이 부회장은 창립 준비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훌륭한 마중물 역할을 해냈다. 협회의 기틀을 다지던 시작점은 2023년 6월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뜻을 함께하던 동기 박진상, 김정규 원우와 함께 유범상 교수님을 찾아가 단체 설립 제안을 꺼냈던 순간은 여전히 생생하다.
“교수님께서 매우 반가워하시며 협회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때 대학로에서 의기투합해 술잔을 기울이며 꿈에 부풀었던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창립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철학과 실천의 일치'였습니다. 방송대 사회복지학과를 중심으로 구축된 선배시민학회의 이론적 토대는 매우 훌륭하고 이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좋은 철학을 어떻게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산시키고 조직화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과제 앞에서는 늘 제약이 따랐습니다. 활동가들도 저마다 생업이 있다 보니 전념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럼에도 박진상 부회장처럼 헌신적인 동지들이 앞장서 주었고, 여러 동지들이 끈질기게 모여 연대한 끝에 창립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선배시민협회의 미래, ‘학습’을 넘어 ‘실천적 정치 운동’으로
협회 창립 이후 조직분과 부회장으로서 연대와 조직화를 위해 애써온 이 부회장은 선배시민협회가 나아가야 할 발전 방향에 대해 묵직한 제언을 던졌다. 선배시민 철학은 노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만약 계속해서 강의실 안에서의 학습과 토론에만 머무르고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협회는 소수의 전의(前衛) 조직이나 개인의 위안을 위한 모임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는 우리 협회가 이제 '대중화'와 '안정화' 그리고 '조직화'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는 단순히 국회나 의회에 들어가는 '제도권 정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복지 자체가 곧 정치입니다. 기후 위기, 도시 안전, 질병과 재난 등 노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회적 공익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선배시민의 '정치 운동'입니다. '우리가 살아보니 매연과 환경오염 때문에 못 살겠다. 대책을 마련하라'고 서울시나 정부에 당당히 정책적 요구를 대중적으로 모아내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경계를 허물고, 철학을 견지한 채 사회적 이슈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실천적 조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현실 정치 출마, ‘삶을 보살피는 생활 정치’의 실현을 위해
시민사회 활동가이자 선배시민 신노년운동의 선두주자로 활동하던 그가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현실 정치에 출마하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중에서도 '노인 차별'이야말로 가장 은폐되어 있고 고질화된 문제라는 문제의식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화폐나 상품성으로만 판단하다 보니, 생산 연령에서 벗어난 노인들을 가차 없이 대상화하고 차별하는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하고 싶었다는 다짐이다.
“약자인 장애인이나 여성이 가산점 등을 통해 정치에 진출하더라도 정작 당사자의 권리를 치열하게 대변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며, 제가 직접 몸으로 겪고 부딪친 선배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내보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제가 주민들께 내세운 주요 공약 방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기본사회(기본소득)'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고, 둘째는 '선배시민 조례' 제정입니다. 셋째는 돌봄 민주주의에 기반한 '돌봄의 사회화'입니다. 돌봄이 특정 개인이나 여성, 가족의 독박 부담으로 남아서는 안 되며,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주민들을 만날 때 '구의원이 왜 이런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냐'고 묻는 분도 계셨지만, 이것이야말로 어르신부터 아이까지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삶을 보살피는 진정한 생활 정치라고 설득했습니다.”
조례 제정과 교육을 통한 ‘선배시민 권리 구체화’

향후 의정 활동 속에서 ‘선배시민의 사회권 확보’와 권리를 구체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되었다. 이 부회장은 의회가 개원하는 7월 중에 곧바로 ‘선배시민 조례’를 발의할 계획이다. 시간이 지나 의정 생활에 익숙해지거나 하반기로 넘어가면 현실 타협적인 구조에 갇혀 초심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에, 임기 초기에 과감하고 빠르게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법안 통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과 동료 의원들의 '인식 변화'입니다. 그래서 법안 발의 전후로 공청회와 토론회를 개최하고, 저를 보좌하는 의회 지원관 및 구청 어르신복지과 공무원들을 오는 8, 9월에 예정된 선배시민 교육에 직접 참여하게 할 생각입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선배시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인식해야만 조례가 상징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행정 현장에서 생생하게 실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현재 지역에 있는 ‘경로당’은 운영 면에서 한계가 많고, 다가오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진입하기에는 정서적 거리감이 큽니다. 그러므로 조례 제정을 바탕으로 기존의 경로당을 선배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회적 지혜를 나누며, 끊임없이 평등하게 공부할 수 있는 '평등교육 및 참여의 공간'으로 혁신하는데도 일조하고 싶습니다.”
관습적 정치를 깨고, 민원을 ‘제도와 정책’으로 해결
앞으로 4년의 임기 동안 구의원으로서, 그리고 협회 부회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최종 과제에 대해 그는 기초의회에 만연한 기존 정치인들의 관습적인 행태를 깨뜨리는 것을 꼽았다. 흔히 주민들은 ‘민원 해결을 많이 해주는 의원’이 정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한 민원 처리는 공무원들이 원칙대로 하면 되는 영역이라는 지적이다.
"정치인의 역할은 개별적인 민원 해결을 넘어, 그것을 '제도와 정책'으로 바꾸어 다수의 주민이 보편적인 혜택을 누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본과 화폐의 논리에 치우친 불공정한 행정을 견제하고, 소수가 손해 보지 않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해 조례와 정책적 대안을 끈질기게 제시하는 정치인, 그리고 민주당이라는 기존 세력 안에서 '선배시민 담론'을 확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완수하고 싶습니다."

6월 27일 협회사무실에서 이수홍 부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활동가들에게 전하는 격려 “선배시민의 정체성 점검”
마지막으로 이수홍 부회장은 각자의 자리에서 선배시민 철학을 확산하며 연대하고 있는 전국의 활동가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미안함을 전했다. 자신이 선거를 핑계로 몇 달간 협회 조직 활동을 소홀히 했음에도 든든하게 자리를 메워준 동지들이 있어 늘 고맙고 든든하다는 인사다. 이와 함께 현장의 활동가들이 늘 자신에게 질문하며 선배시민의 정체성을 스스로 점검할 것을 당부했다.
“현장에 계신 활동가분들께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늘 자신에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 목표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선배시민의 정체성을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배시민 운동을 펼칠 때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큰 벽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인을 가장 많이 차별하는 이들은 바로 동년배 노인들 자신이며, 가까운 가족입니다. 나이 먹는 것을 감추기 위해 젊어 보여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적 인식이 우리 내면에 깊숙이 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와 의식 속에 은폐된 차별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나름의 삶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관습부터 하나씩 깨뜨려 나갈 때 선배시민 운동은 진정한 세력 확산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동작구의회라는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선배시민이자 활동가로서 당당히 맞서 나가겠습니다.”
이수홍 부회장과의 인터뷰는 단순한 정치인의 포부를 듣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평등’을 위해 투쟁해 온 한 활동가가, 노년이라는 삶의 단계에서 어떻게 현실 정치의 모순을 깨뜨려 나갈 것인가에 대한 실천 선언이었다. 동작구의회라는 새로운 실험실에서 그가 쏘아 올릴 선배시민의 당당한 정치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노인 차별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