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노인연합과 노인동맹단 강우규처럼
노인은 그 사회에서 연장자, 즉 선배이다.
그런데 선배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분은 군대에서 만난 선배를 떠올리면서 분노하기도 한다.
직장선배와 학교선배도 마찬가지이다. 살다 보면 좋은 선배도 있지만, 상처를 준 선배도 많다. 선배라는 존재 자체가 억압의 주체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선배시민론에서 말하는 선배는 군대선배, 직장선배, 학교선배, 동네선배와 다른 선배이다. 즉 시민으로서 선배를 의미한다.
시민 선배란 시민권을 권리로 알고, 이것을 함께 나누고 실천하는 선배이다. 그는 자신은 물론 동료시민과 후배시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 형성에 관심을 갖는다.
시민선배의 전형은 ‘유럽노인연합 EURAG’이다
유럽노인연합은 「유럽연합인권헌장」 제25조에서 언급한 노인의 권리를 실천하고 있다.
“존엄성 있는 독립적 생활을 영위하고, 사회적·문화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노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유럽노인 연합은 1962년 룩셈부르크에서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로 유럽 28개국에 기반한다.
자원봉사를 중심으로 유럽연합과 개별 회원국에서 제기되는 노인 관련 이슈들에 개입하고 있다. 유럽노인연합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모든 노인들은 사회적·문화적 삶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미래 세대의 공동체와 동료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
유럽노인연합은 사회권을 노인의 권리로 주장하고, 미래 세대의 공동체, 후배시민과 동료시민, 즉 모든 시민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한다.
이것은 노인들이 스스로는 물론 후배시민을 대변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외국의 시민선배로 유럽노인연합이 있다면, 한국에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이하 노인동맹단)’과 강우규 열사가 있다.
강우규 열사는 1919년 서울역에서 신임 조선 총돆에게 폭탄을 던졌다. 그는 당시 65세 노인이었다.
1920년대 평균수명이 40살 초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강우규 열사는 고령의 노인으로 거사에 참여한 것이다.
그가 속한 노인동맹단은 3·1운동에 자극을 받은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들어진 단체이다.
청년이 아닌 노인들이 독자적으로 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전개한 경우는 드물다.
한의사였던 강우규열사는 청년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영명학교, 관동학교, 협성학교 등을 설립했다.
청년들에게 좋은 공동체를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청년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이때까지 우리 민족을 위하여 자나 깨나 잊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 청년들의 교육이다. (...)
내가 이번에 죽으면 내가 살아서 돌아다니면서 가르치는 것보다 나 죽은 것이 조선 청년의 가슴에 적게나마 무슨 이상한 느낌을 줄 것 같으면 그 느낌이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은예린)
강우규의 거사는 청년들에게 ‘가슴에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1920년 한 청년은 서울역에서 외친다.
“강우규 어른은 연로하신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위해 희생되셨다. 젊은 우리가 어찌 가만히 있을쏘냐.”(e지식채널, 어른들)
강우규 열사의 동상은 현재 서울역전에 세워져 시민선배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선배는 유럽노인연합처럼 시민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선배이다.
이것을 알고, 알려주고, 실현하기 위해 움직인다. 시민선배는 노인동맹단의 강우규 열사처럼 후배시민들에게 더 나은 공동체를 물려주려는 선배이다.
그는 후배시민의 교육과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유범상·유해숙저, 선배시민 –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