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시민 이야기

No人에서 Know人으로!
돌봄의 대상에서 돌봄의 주체로!
자식농사를 넘어 시민권 확보로!

Senior Citizen Union

당당하게 늙어가기

 
2024.01.04 02:15

선배시민의 집짓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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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범상 교수

 

 

No人에서 Know人으로...

노인은 경제력만 빼고 보면 지혜로운 사람, 노인이다.

노인이 없으면 옆집에서라도 빌려와라 – 덴마크 속담

노인 한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난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 아프리카 격언

노마지지 : 늙은 말의 지혜, 싸움은 잘 못해도 길을 찾아 준다.

No人에서 Know人으로, 

그런데 Know人은 그들이 좋은 집에 살 때 가능 하다는 것이다.

 

선배시민의 집을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Homo Economicus에서 Homo Politicus로 가야한다.

 

Homo Economicus는 경제적 인간, 경제적 동물로서 생존과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가장 큰 특징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효율성을 따지는 존재이고 그에 성과는 재산으로 본다.

 

Homo Politicus는 정치적 인간, 정치적 동물로서 공동체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고대 희랍에서는 공동체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이디오테스’(바보, 얼간이, 멍충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공동체에 모여 토론하고 대화할 때 나는 그냥 돈이나 벌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디오테스이다. ideotes 는 바보란 뜻이다.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Homo Politicus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 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의미한다. 내가 사는 공동체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선배시민의 집은 소득, 의료, 돌봄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 번째가 소득이다.

두 번째가 의료이다.

세 번째는 돌봄이다.

이러한 것은 돈이 많이 든다. 누가 그런 집을 지을 줄 모르는가.  돈 때문이다.  그럼 선배시민의 집, 국민의 집을 만들 때 재원 조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선배시민의 집 재원의 조달처로서 첫 번째는 부자들의 기부이다.

마크 저커버그의 놀라운 기부와 불편함을 보면, 저커버그는 2015년도에 자신의 딸이 태어나자 52조원을 기부한다. 페이스북 주식의 99%이다.

그리고 교육과 의료를 위해 써달라고 한다. 놀라운 사람이다. 돈은 기부에 의해서 조달된다. 저커버그가 기부할 때 딸에게 쓴 편지에는

 

“우리는 네가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

 

저커버그의 놀라운 기부가 정말 좋은 걸까. 선배시민의 근본적 질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순수한 기부가 아닌 유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기부하였다. 유한회사의 소유권은 저커버그와 그의 가족이다. 합법적으로 재산을 이동시킨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혹평을 한다.

 

“저커버그의 기부는 왼쪽에 있는 돈을 오른쪽으로 옮긴 것이다.”

 

그 밖에 증여세 면제도 있다. 그래서 굉장히 비판적오르 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자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이라고 부른다.

자선을 뜻하는 ‘philathropy’와 자본주의를 뜻하는 ‘capitalism’의 합성어이다. 저커버그는 경제적 영역에서 나름대로 크게 성장한 사람이다.

그것을 가지고 사회로 간다. 즉 자신의 재산으로 사회 장악 의독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것이 두 번째 불편함이다.

 

시장에서의 자본주의가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다.

선배시민의 집 재원 조달방법 중 기부방법도 그 중 하나인데, 옳은 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받는 사람은 자선과 시혜가 된다. 권리적으로 평등하지가 않다.

그래서 과연 옳은 방식일까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선배시민의 집 재원의 조달은 ‘부자 증세’로 나와야 된다고 주장한다.

선배시민의 집이 지어지려고 하면 증세를 통해 재원이 조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NHS(국민건강서비스)는 99% 일반조세에서 조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들어 선별해서 주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일이지만, 문제가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부자증세의 방법은?  평등인가 불평등인가? 사례를 들어보자

50Km 구간에서 75km로 주행, 벌금 11만 6천 유로(1억 8천만원) 안시반요끼, 노키아 부사장 사례가 있다. 저 정도 벌금을 내야지만 그사람은 내가 규칙을 위반하면 안 되겠구나 할 것이다.

하루 하루 사는 사람에게는 벌금 10만원은 일당이 된다. 벌금의 차별화가 이것이 바로 평등한 조세이다. 범칙금조차도 소득 이전을 시키려는 소득 재분배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돈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소득을 재분배하는 방식을 취한다. 탈 상품화와 계층화 수준을 낮추는 방법이다. 소득세, 자본세 등은 훨씬 더 소득 불평등을 바꾸기 위한 제도 등이다.

 

데이비드 로이드조지(1863-1945년)는 영국의 정치가로 자유당 출신 총리이다.

1945년 영국의 복지국가가 등장하였는데, 1910년대 자유당이 집권하면서 영국 복지국가의 초석이 마련되었다.

그때 로이드 조지가 노령연금 같은 것을 만들었다. 노인들이 우체국에 달려간다.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면서 달려간다. 국가가 공짜로 주는 것이 어디냐. 그런 생각이다.

로이드 조지는

 

“달걀을 꺼내가도 별로 표가 나지 않는 사람에게서 가져와야 한다.”

 

우리가 부자라고 할 때, 어느 정도를 부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얼마나 벌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내 재산이 얼마 만큼인지 알지를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서 달걀을 꺼내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의 예산안이다.(people’s budget)”

 

그렇게 해도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말한다.

 

“국민의 예산은 빈곤을 상대로 한 전쟁에 드는 예산이다.”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조세’이다.

즉 ‘조세’가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과 우리나라의 세전-세후 빈곤율 변화를 보자.

OECD는 세전 0.284의 빈곤율에서 세후에는 0.108로 낮아져서 0.178 차이가 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전 0.173에서 세후에는 0.149로 0.024만큼만 줄어든다. 7.4배정도 차이가 나고 있다.

OECD에 비해 우리나라는 세금을 통한 소득이전 시스템이 매우 취약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사회 불평등 개선에 조세정책을 활용하는 OECD 선진 국가들이다.

 

이와 같이 조세를 통한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는 방식을 ‘연대’라고 한다.

즉 ‘연대’는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덜 버는 사람에게 소득이전을 시켜주는 방식이다.

오늘은 내가 더 많이 벌지만 내일은 내가 더 많이 번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더 많이 벌지만 내 자식이 더 많이 번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연대’라고 한다. ‘사회적 연대’는 사회나 집단에 의해 나타나는 통합력이다.

 

앞서 살펴 본대로 조세의 소득 불평등 개선 효과를 보기 위하여

세전 빈곤율에서 세후 빈곤율을 뺀 조세를 이용한 개선 폭을 보면 프랑스 0.268%, 핀란드 0.249%. 독일 0.235%, 벨기에 0.226%에 비해 우리나라는 0,024%로서 프랑스에 비해 11배정도 떨어지고 있다.

우리도 세금 많이 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금의 양보다 조세정책이 중요하다. 우리는 세금 감면제도들을 뜯어 보면 고소득층이 훨씬 더 감면을 많이 받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 즉 우리나라는 소득이전이 굉장이 취약한 나라이다.

 

그렇다면 위의 것들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조세평등이 가능하려면 그러한 것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제도로 법으로 만들 힘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가능해야 한다.

조세 평등이 가능하려면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필요하다. 이것이 하나의 정치이다. 그런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정치이다.

 

 

그런데, 하루 24시간 인간은 먹고 사는 일로 바쁘고 또 바쁘다.

 

“정치요. 정치가 밥 먹여 준답니까? 바빠 죽겠는데”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 대학등록금, 공공의료, 노령수당과 노인 돌봄, 이런 것들이 모두 정치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 정치는 밥을 먹여준다. 그런데 정치를 왜 혐오할까?

 

“거 몰라서 묻습니까. 지금의 정치꾼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제 뱃속 채울 줄만 알지”

 

 

플라톤은 말했다.

“우리가 정치를 외면한 댓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로부터 지배를 당하는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1906년-1975년)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침묵, 순응, 묵인, 방관할 때 악은 만들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외에는 없다.”

 

정치꾼을 만드는 것도 역시 나이다.

독재자를 만드는 것도 역시 나이다. 정치는 공기다. 인간에게 정치는 공기와 같다. 공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인간. 정치는 정치꾼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의 일로 정치를 바라보아야 한다.

 

politician(정치꾼)은 공적인 권력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statesman(정치가)은 공적권력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바라보면 다 정치꾼만 보인다. 그래서 에이 ‘정치는 정말 상종도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현실은 정치꾼을 버리면서 정치까지 버리게 된다. 그런데 정치를 버리면 가장 좋은 사람들이 누구일까. 바로 정치꾼들이다.

 

“시민이 정치꾼이 싫어 정치를 버리면 가장 좋은 사람들은 정치꾼들이다.”

 

플라톤은 “착한 사람은 악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말하였다.

즉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 우리가 침묵, 순응, 적응, 무관심할 때 악한 사람의 등장을 방조하게 된다. 이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이 없을 때 악이 등장한다. (독일인의 침묵과 히틀러의 등장) 정치꾼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정치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선의 평범성’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할 때 선이 만들어진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판하기 시작할 때 ‘선’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우리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의료, 돌봄, 소득 등 매우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그런 상황들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상황들을 개선하려고 하는 것들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정치에 참여가 필요하다. 특히 시민들이 참여한 정치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위해서 이다.

 

선배시민의 집을 만드는데는 부자들의 기부가 아닌 부자들의 증세이다.

소득세, 자본세 등은 소득 불평등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방법은 시민들이 참여한 정치이다.

 

 

선배시민 - 데오도르 제리코(1816년) 메두사의 뗏목.jpg

 

 

1816년에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그림이 있다.
프랑스정부의 전함 ‘메두사호’가 침몰한 후의 사건을 재현한 그림이다. 살아남은 10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정신분열증에 걸린다

 

자본주의와 메두사 뗏목의 연관성은?

자본주의의 처음 시작은 상업자본주의였다. 중상주의시대에는 유럽에서 주로 만든 공업제품 같은 것을 가지고 아프리카 식민지로 싣고 가서 팔고, 노예를 산다.

그리고 그 곳의 노예를 사서 남미 아메리카 농장 등에 그 노예들을 팔고, 그리고 설탕 등 식민지에서 원료 획득, 금, 은의 유입 등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이 삼각무역이다.

메두사호가 그런 배이다. 절대군주와 결탁한 자본가들, 부르주아들이다. 선장은 뇌물로 선장이 된 퇴역 군인이다. 그런데 배가 침몰했는데, 그 원인은 절대군주와 선장이다.

그럼 피해를 누가 봐야 하는가. 선장과 자본가, 절대군주여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놀라우리 만큼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르다. 피해의 원인을 밝히기도 정말 힘들다.

 

이것을 가지고 울리히 벡(UlrichBeck 1944-2015)(위험사회의 저자, 독일 사회학자)은

위험사회의 특징을 위험은 전면화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르고, 위험의 원인을 밝히기가 힘든 것이 특징이다. 위험은 굉장히 계급 차별적이다.

 

여기에서도 선장은 살아남는다. 그 당시에는 구명정과 뗏목을 받줄로 연결해서 살려고 하였다.

선장과 부르주아들은 모두 구명정에 탑승하고, 선원들과 노예들은 뗏목에 탔다. 구명정은 있는 사람들이 타고 뗏목에는 없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구명정에 있던 선장이 구명정과 뗏목과 연결 되어 있던 밧줄을 잘라낸다. 구명정에 탄 사람들은 뗏목에 탄 사람들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두사호의 뗏목만 남게 된다.

 

자본가, 고급군인, 귀족 등만 구명정에 태우고 일하러 간 사람은 뗏목에 태운다.

급기야 뗏목의 끈을 끊고 달아난 부르주아 계급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정신분열증에 걸린다.

테오도르 제리코(프랑스 낭만주의 선구자) 1816년에 난파된 메두사호 사건을 거대하고 웅장한 역사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치 증식하는 돈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그대로 놔두게 되면 뗏목에 있는 사람들처럼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것들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방지하는 방법이 뭣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는 것이다.

그럴 때 토마스 험프리 마샬(1893-1981)이 이야기 했던 시민권을 보장해주어야 된다고 보았다.

 

마샬의 시민권은 자유권, 정치권, 그리고 사회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어지지 않을 때, 그리고 내 권리라고 달라고 하지 않았을 때는 저 구명정과 뗏목에서 뗏목에 탄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 인식 들 속에서 시민들이 정치적 과정에 개입하면서 3가지 권리나, 다섯 가지의 거인을 물리쳐 나가는 것이다.

위화감이나 상대적 불평등까지 해소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않는 사회, 그런 것들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회나 국가, 탈 정치화는 위험사회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자각정치참여 과정에서 시민권의 획득사회적 위험, 위화감, 상대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나서야 한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탈정치화된 사람들은 바보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각을 위해서는 성찰해야하고, 정치참여를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 - 프락시스, 프레이리

 

“자본주의의 위험을 인식하지 않는 사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별 관심의 없는 사람, 그저 오늘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힘드니까 내 생계만 책임지고,

난 정치와 무관하다며 탈정치화는 또 다른 더 위험한 사회를 조장하는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탈 정치화된 사람들은 바보들이다.”(유범상교수)

 

 

찰리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의 내용이다.

당시의 공장법(영국) 영국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조건을 시정하기 위하여 시행된 법률이다.

그 내용을 보면 4살부터 13세 이하 아동의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규정해 주었다. 4살부터 시작되는 노동, 탄광, 굴뚝, 방적공장에서 일했던 아동들(올리버트위스트)이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등장하였다.

14살부터 19살까지는 14시간을 시킨다, 그러면서 너무 일을 많이 시키지 마라고 하였다. 그 상황에서 노동자들 크레이지가 되어 간다. “He’s crazzy”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권과 시민권보장이다.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가정, 학교, 공장에서 제기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흥미롭지만 슬픈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산재가 별로 안 일어나는 나라로 되어있다. 그런데 산재사망율은 매우 높은 나라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화끈해서 안 다치거나, 다치면 사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재 은폐 10건 중에 8건은 은폐한다. 자체적으로 해결이다. 의료보험으로 처리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불합리한 상황을 어떻게 문제제기를 해야 할까?

산재노동자 2000명 정도가 죽는다. 이라크 전쟁으로 미군이 죽은 것이 한 50명 정도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 산재는 노동력 상실이다. 그리고 사회임금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곧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곧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노동의 문제는 노동자만이 아닌 시민 모두가 제기하는 문제이어야 한다.

 

한국의 산재 사망에 따른 1인당 기업 범칙금 50만원. 영국의 산재 사망에 따른 1인당 기업 범칙금 6억 9천만 원. 영국은 기업 살인죄이다.

영국은 2007년도 도입, 사고를 낸 조직에 살인죄 등 형법을 적용해 거액의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도 “이 참에 전체적인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는 것은 똑 같다. 그러나 안전 검검 후의 상태는 영국과 한국이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삼품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최근에 옥시까지 우리나라는 수없이 많이 일어났다. 대형 참사를 경험했던 영국, 이참에 전체적인 안전 점검을 해야 한다.

안전 점검 과정에서 기업 살인죄가 도입된 영국!

삼풍, 성수대교, 대형참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안전점검을 하지 않는 대한민국이다.

 

세월호 가방사례이다.

가방에 노란리본을 달고 다닌다.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 대표가 한말이 있다. 길을 가다 가방에 노란 뱃지를 보면 안도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무도 안하면 있으면 내가 비정상인가 하는 불안감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시민들은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뱃지 하나 달아주는 일도 되는 것이다.

 

노란 뱃지하나가 왜 정치일까?

제주도 여행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냐. 아니면 규제완화로 민간안전협회가 규제에 대한 문제인가를 세월호 사고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질문하는 것이 정치이다.

 

전체적인 안전 점검을 하지 않아 또 발생한 사회문제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안방의 세월호와 같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산모, 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린 사건이다. 안방이 세월호 사건이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즉 뗏목과 구명정의 구조가 계속 된다. 뗏목과 구명의 구조에 대해 계속해서 일상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아이, 노동자, 일반시민, 노인 모두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제기하는 것이 정치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Homo politicus이다 라는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자율 안전 대상이었다.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유럽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외국업체가 한국에 와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에서 그런일 발생하지 않았다.

그 나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한 것이다. 한국에는 정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정치라는 것은 세월호를 보며 노란뱃지를 다는 것, 문제를 보면서 분노하는 것 이것이 모두 정치이다.

이것을 마치 바보처럼 있는 것이다. 우리는 ideotes 바보가 되는 것이다.

 

위험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에서 오는 것인지, 뗏목과 구명정의 구조에서 오는 것인지 속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참치 캔 따는 것, 가습기 살균제 참사. 과연 위험은 누구의 책임일까?

청각의 손상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수어를 배우지 않아서이다. 미국 마서스 비니어드 섬 얘기이다.

 

기가 막히네요.. 장애인은 사람이 아닙니까.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습니까?

 

위험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개인입니까. 사회입니까.

외국인 장애인이 한국에 오면 뭐 이따위 나라가 다있어? 문명적이지 않은 나라이다.

사람들이 수화를 하지 않아서. 장애인더러 사회에 적응하고 요구할 뿐, 장애인에게 사회가 적응하려 하지 않은 사회이다.

장애인의 99%가 후천적 장애이다. 장애는 사회적 위험이다. 사회적 위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사회가 달라진다. 위험을 함께 할 것인가.

 

평등 – 사람들에게 받침대를 다 하나씩 주는 평등이다.

조건에 상관없이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건의 평등, 조건을 고려하여 적절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병목사회 – 불평등과 다원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

조지프 피시킨 작,  <병목사회>란 책이 있다.

세 개의 계급이 있다. 중세 ; 성직자, 귀족(병사), 평민 – 세습이 된다.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인식한다. 신분이 세습되는 사회구조의 잘못을 인식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새롭게 룰을 정하자.

16살 되는 사람들을 다 모아서 운동경기로 정하도록 하자고 한다. 운동경기를 하면 귀족의 아이들이 이긴다.

 

그래서 존 롤스는

“태어난 혈통과 환경이 아닌 능력에 따라 기회를 주자”

 

굉장히 좋고 평등한 것처럼 보인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3배 이상 언어능력이 발달한다고 한다.

실제로 능력에 따른 기회제공도 조건이 동일하지 않으면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부의 대물림의 사회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까.. - 기생충

 

우리가 호모 폴리티쿠스가 된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이다.

시민으로서의 권리 주장. 권리를 통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민이 된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나의 권리는 일을 하는 노동권으로서의 나이다. 일하면서 일터에서 권리를 갖는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권리, 소득을 가질 권리,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노동권이 있다.

노동권을 가져야 한다. 실업자, 장애인 등의 사회적 권리인 시민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노동권을 가지지만 또 한편에서는 내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권과 시민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정치적으로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 광장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떠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 문제들이 토론의 광장에서 이야기 될 때, 사회적 위험들의 해결이 가능해지리라 본다.

나는 노동자의 공간 기업에서, 시민의 공간 국가에서 즉 토론의 광장에서 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노동권과 시민권의 보장과 토론하는 시민이 있을 때 선배시민의 집을 지을 수 있는 집의 조건들이 마련되는 것이다.

 

즉 선배시민의 집은 노동권과 시민권의 보장과 토론하는 시민이다.

 

유연안전성이라는 말이 있다.

유연안전성(Flexicurity) = 유연성(Flexibility) + 안전성(Security)

기업은 자유로운 해고와 채용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그렇게 유연하게 하더라도 노동자는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안정적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말한다.

서유럽의 구조조정은 모두 유연 안전성을 갖고 있다. 시장임금이 줄더라도 사회임금으로 보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안정성 없는 유연성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일터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광장이 열릴 때 가능하다.

 

 

노령은 선배시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인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자각할 때 선배시민의 집이 건축된다. 선배시민이 가져야 할 정치적 지향점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위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이다. 위험이 개인의 문제인지, 뗏목과 구명정의 구조에서 오는 것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다. 나는 노동권과 사회권, 시민권 등 나의 권리가 보장 될 때 만들어지는 것이 선배시민의 집, 국민의 집이다.

후배를 돌볼 줄 아는 선배시민, 그 존재를 깨달을 때, 달라지는 노인의 삶이 달라진다.

 

이를 위해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를 가능케 하는 것이 광장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리그 아고라 광장의 원로회, 공동체의 길을 묻고 토론했던 노인들이며, 공동체 일에 관여하는 Homo politicus이다.

나의 위험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광장의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 선배시민이 굉장히 유리한 것이 있다.

선배시민은 눈에 뵈는 것이 없다. 즉 두려울 것이 없다.

아인쉬타인은 히틀러를 비판하다가 미국으로 망명을 했는데, 미국을 비판하다가 미국인들이 비난하니까

 

“나 같은 선배(노인)이 비판해주지. 그럼 누가 그렇게 얘기할 것인가?

 

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선배시민의 두 번째 유리한 점은 인구가 즉 쪽 수가 많다는 것이다.

선배시민은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1955년생부터 1963년생까지 베이비 붐이 14.5%이다. 65세가 되어간다.

 

세 번째는 노인은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

 

네 번째로는 더 이상은 한국 노인들은 개인적인 위험에서 버틸 수 없다. 서울에서 살기 위한 노인 최저 생활비 190만원이다.

그래도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서는 270만원이다. 의료나 돌봄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것들이 보장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노인들이 정치적 인간이 돼야 하는 이유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필요조건이다.

 

독일 은발의 표범당이 있다. 독일의 노인정당이다. 지금도 총선 때마다 후보를 내고 있다. 은발의 표범당에 젊은이들이 가입한다.

선배시민을 지지하는 독일의 젊은이들이다, 우리도 곧 노인이 된다. 성공한 노인은 혼자서도 나와 자기 가족을 돌볼 수 있는 노인들이다.

선배시민은 광장에 나와 소통하면서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선배시민의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그 답은 광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글은 공감특강, 「 No人인가 Know人인가 – 선배시민의 집짓기」 의 강의 내용을 재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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