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시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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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ior Citizens Society

당당하게 늙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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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할 줄 아는 선배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의 노벨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에서는 노인과 소년이 친구 같은 관계로 나온다.

작품의 주인공은 노인이지만, 노인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은 동년배가 아니라 소년이다. 노인이 고기를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다를 배를 타라고 한다.

혼자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간 노인은 5.5미터, 700킬로그램에 이르는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잡은 청새치를 먹으려는 상어와 긴 싸움을 한다. 이때 노인은 반복해서 말한다.

 

“그 애가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도와줄 수도 있고, 이걸 구경할 수도 있을텐데” (헤밍웨이)

 

노인에게 소년은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였다.

늘 노인을 마중 나갔고, 힘든 일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낚싯줄, 작살, 돛대 등을 함께 운반했다. 그렇다면 소년에게 노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고기잡이의 스승이었다.

고기 잡는 법과 인생의 경험을 나누었다. 노인은 말한다.

 

“생각만큼 그렇게 힘이 세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요령을 많이 알고 있는 데다 배짱도 있지.”(헤밍웨이)

 

소년에게 노인은 몸은 늙었지만, 의지와 생각만큼은 활기로 가득 찬 존재였다.

 

“노인의 두 눈을 제외하면 노인의 것은 하나같이 노쇠해 있었다.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헤밍웨이)

 

이런 맥락에서 <노인과 바다>에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 당 할 수 있는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지” (헤밍웨이)

 

노인은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오두막으로 무사히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소년은 그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엉엉 울었다.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노인과 소년은 말한다.

 

“네가 보고 싶었단다.”

“얼른 나으셔야 해요. 전 아직 할아버지한테 배울 게 너무 많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제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셔야 해요. 대체 얼마나 고생하신 거예요?”(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는 ‘노인과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노인과 소년의 우정을 멋지게 그렸다.

이들은 서로 의존하고, 지지하고, 소통한다. 이들은 평등한 친구로서 서로가 가진 장점을 공유하고 돌본다.

 

선배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기에서 권위와 권위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authoritarian’이라는 영어 표현은 ‘권위주의적’으로 번역된다.

권위주의는 비판하거나 도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요구를 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의미한다.

가령 자동차 문을 열어주거나 상사의 이삿짐을 나르는 데 동원되는 형태이다.

한편 ‘권위 있는’으로 번역되는 ‘authoritative’는 어떤 분야나 일에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심리학의 권위자야! 처럼 권위는 믿음, 존경을 표시한다. (...)

 

노인은 권위주의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모든 것에 우선이고 모든 것을 양보하라고 하는 순간,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선배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선배가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직장이나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가 강제로 술을 먹인다든가, 군대에 가면 선임이 괴롭힌다든가 하는 경험이 있다.

이와 달리 선배시민론에서 선배는 시민으로서의 선배, 시민 선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민 선배는 어떤 권위를 가져야 하는가? 즉 시민으로서 선배다움은 어떤 것인가?

 

선배의 권위는 시민권을 권리로 주장하는 데서 나온다.

모두가 시민권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고 앞장서서 권리를 요구할 때 후배들은 그 선배를 시민 선배로 인정할 것이다.

시민권은 모두가 안전한 공동체에 대한 상상이며, 공공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선배는 또한 소통의 과정에서 권위주의적이지 않을 때 권위를 가질 수 있다.

‘너 몇 살이야? 나는 젊어도 보고 늙어도 봤는데, 너는 늙어 봤어?’ 하고 말하는 노인은 권위주의적인 노인이다.

늙어서 보이는 것도 있지만, 늙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도 있다. 국민학교에 다닌 세대는 초등학교에 다닌 세대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선배의 권위는 차이를 인정하고, 묻고, 듣고 이해하고자 할 때 확보된다. <노인과 바다> 속의 노인과 소년은 서로에게 권위를 갖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시민 선배는 시민 후배에게 시민권을 설명하고, 실천하고, 이를 위해 소통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시민 선배는 시민권으로 빵을 얻고, 시민권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통해 시민사회에서 존중, 즉 장미를 얻을 수 있다.

(유범상·유해숙저, 선배시민 –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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