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 ‘공영장례’ 무엇이 문제인가
선배시민협회, 지난 9일 개최한 ‘미미공론장’ 다섯 번째 마당
“기본권으로서 존엄한 죽음은 가능한가” 주제로 임기헌 회원 발제
취약계층 위한 공영장례조례 제정 지자체 181곳, 애도 권리보장은 두 곳에 불과
장제급여제도 시민들 거의 몰라…스웨덴은 국가가 장례 치러줘
선배시민협회(협회장 유해숙, 이하 ‘선시협’)는 지난 10월 9일(수) 저녁 7시 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기본권으로서 존엄한 죽음은 가능한가”라는 주제하에 회원 약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온라인(ZOOM) 토론회 ‘미미공론장’ 다섯 번째 마당을 개최했다. 이 공론장은 부산지역에서 2016년부터 공영장례 지역운동을 펼치고 있는 임기헌 선시협 회원(부산반빈곤센터 소장, 현직 확인 요망)의 그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 운동이 기본권 보장운동으로서 선배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실천들이 가능할지 토론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미미공론장 다섯 번째 마당에서 발제하고 있는 임기헌 회원.
발제자로 나선 임기헌 소장은 “기본권으로서 존엄한 죽음은 가능한가”라는 제하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보장되어 있는 장제급여의 집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고, 부산시 공영장례 지역운동 현황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선배시민협회가 해야 할 일들을 제안했다.
프랑스 인류학자 아널드 반 게넵은 장례식을 세 단계로 나눈다. 죽음으로 인해 산 자와 죽은 자가 분리되는 ‘분리기’, 죽은 자와 산 자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전이기’, 죽은 자가 다음 세상으로 가서 통합하고, 산 자가 현실 사회로 돌아가 통합하는 ‘통합기’이다. 발제자는 이 중에서 “전이기가 장례를 치르는 기간인데,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산 자가 이 기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면 평생 한으로 남거나 현실 사회로 온전히 복귀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발제자는 “장례식은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애도와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가난한 자의 죽음도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
발제자는 “삶과 죽음은 태초부터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삶이 존엄하게 완성되려면 그 마지막 단계인 죽음이 존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존엄한 죽음은 기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존엄하지 못한 죽음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무연고자나 사회적 취약계층 주민이 혼자 살다가 마지막 가는 길에는 두 가지가 없다고 한다. 바로 ‘영정 사진’과 ‘빈소’이다.”라고 말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장제급여’라는 게 있다. 생계급여, 주거급여 및 의료급여 중 하나 이상의 급여를 받는 수급자가 사망해 사체의 검안·운반·화장 또는 매장, 그 밖의 장제조치가 필요한 경우 지급되는 급여이다. 이 급여는 해당자의 장제를 실제로 행한 자가 신청하면 지급되며, 1구당 80만원이다.
발제자는 “특히 무연고자 장제는 장례업체를 지정해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사망신고가 접수되면 그 정보를 접수하고 먼저 시신에 도착한 업체가 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업체들은 시신의 안치, 염습, 입관, 운구, 화장, 봉안/산골 등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장례가 전혀 존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무연고자나 사회적 취약계층 등이 장례식 없이 안치실에서 바로 화장장으로 가는 무빈소 직장(直葬) 방식이 아닌, 최소한 가족과 지인, 공동체 구성원들이 애도할 ‘공간’과 ‘시간’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공영장례 조례가 있는 지자체에서는 빈소를 설치하여 장례의식을 행할 경우 8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부산광역시 공영장례조례 제3조(시장의 책무)를② 보면, “시장은 무연고자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와 사별자의 애도할 권리 보장을 위하여 공영장례 일정 등의 부고를 게시하고 공영장례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별자와 자원봉사자 등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발제자는 “부산광역시 공영장례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애도할 권리가 보장된 조례는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한 전국 181개 지자체 중에서 부산과 서울 2곳뿐이다. 하루빨리 애도 권리를 추가하는 개정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기관 특성상 먼저 나서질 않으므로 시민단체들이 자꾸 민원을 넣어서 조례 제정과 개정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배시민협회 회원 약 50명이 온라인 화상회의로 미미공론장 다섯 번째 마당에 참여하고 있다.
장례의 상품화 극복할 전국적인 공영장례 지역운동 필요
이어 발제자는 “이를 위해서는 전국적인 공영장례 지역운동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모든 시민이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 또한 필요하므로 기본권 차원의 운동이어야 하며, 모든 시민이 애도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를 당당하게 누리기 위한 보편적 사회보장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공동체 장례가 시작된 것은 2016년 홈리스 이주노동자가 무연고로 사망하여 지인들이 모여 장례를 치르면서다. 2021년 공영장례 실태조사 준비위가 꾸려졌고, 토론회, 정책 토론회 등을 거쳐 12월 29일 조례가 제정되었다. 2022년에는 영락공원 전용빈소가 마련되었고, 2023년에는 공영장례제도 조문단 및 모니터링단이 조직되었고, 공영장례 상담센터가 문을 열었으며, 영화숙 재생원 피해 생존자 등 거점별 조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에는 부산시민 공영장례 조문단 양성과정 2기, 3기를 운영했다.
발제자는 “조문단 양성과정 1기는 10여 명에 불과했는데, 2기, 3기로 가면서 지원자가 30, 40명으로 점점 늘어서 힘이 난다”고 말하면서,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면서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정성스럽게 편지나 카드를 써서 읽어 주기도 하는 등 자기 방식대로 애도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빈소 유지 시간이 4~6시간으로 짧아서 낮시간일 경우 직장 다니는 조문단원들은 조문 참여가 어렵고, 휠체어로 이동하시는 분들은 계단 때문에 접근이 어렵기도 하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장례식장 중에 일부가 휠체어 접근이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동권 차원에서 이를 개선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는 등 기본권 운동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발제자는 마무리 발언을 통해 “장례가 상품화되어 장례업자나 거대 장례업체의 횡포가 매우 심하다. 사고사의 경우 1번 도착자가 시신을 확보하고 장례 진행권을 가져가는 구조다. 자동차 사고 시 사설 레커차가 빨리 도착하여 고객에게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것과 같다. 그 틈바구니에서 시민단체가 끼어들려면 업체들과 거의 전투를 해야 한다. 영정 사진을 인화하려면 고인의 사진이나 신분증을 확보해야 하고, 추도사를 쓰려면 고인의 이력을 알아야 하는데 개인정보 유출이라고 구청에서는 협조를 안 해 준다. 따라서 공공 영역이나 시민사회에서 장례를 담당하는 방식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장례에 대한 실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공영장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례선택권 등 1인 노인 가구 증가에 따른 새로운 장례문화 고민해야
발제 후 이어지 토론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A회원은 “학생들이 공영장례식에서 조문하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결합시키면, 고인에 대한 추모도 할 수 있고, 초중고생들에게 삶의 과정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공영장례를 치를 수 있는 전용빈소가 어느 정도인지, 조례 제정 추진방법에 대한 B회원의 질문이 있었는데, 발제자는 “서울시에는 전용 빈소가 충분한데 부산은 부족해서 일반 장례식장을 사용한다. 그리고 시장 선거 때 시민단체가 나서서 공약사항에 넣도록 하면 조례 제정이나 개정 성공 확률이 높아지더라”고 귀뜸했다.
C회원은 거주지인 인천의 모 장례기관에서 학우들과 봉사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은 곳인지 어떻게 검증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D회원은 “1인 가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장례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녀가 있어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본인 장례를 공영장례로 치르기를 바라는 노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E회원은 “혈족 중심의 가족에서 가족의 인정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사회적 가족 개념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 입양제도를 이용하는 방법도 거론됐다. 독거 노인일 경우 본인보다 한 살이라도 적으면 자녀로 입양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이를 활용하면 노년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나 후배에게 장례를 맡길 수도 있다. 파양도 쉽다고 한다. 사전 장례의향서를 작성하는 방안도 부산에서 시도 중이라고 한다. 죽는 방식에 대한 선택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며, 미미공론장에서 다뤄 보자는 의견도 나욌다.
시민이 가족이 되고 사회적 우정이 쌓일 때 사회적 돌봄 이루어질 것
공론장 마무리 발언에 나선 유해숙 선시협 협회장은 “이번에 스웨덴에 가보니 묘지가 집 근처나 교회 같은 생활권과 가까운 곳에 많이 있었다. 덴마크에 있는 안데르센 묘지는 피크닉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서 이 나라에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웨덴은 장례를 국가가 주관해서 모두 진행한다. 가족들은 장례 주관 기관에서 요청할 때 참석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서 “다만, 원하면 비석 마련은 가족의 몫이며, 장례나 노년에 대한 가족의 부담을 국가가 덜어주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사이가 좋게 지낸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족끼리 제휴를 하니까 서로 부담이 된다. 시민이 가족이 돼서 사회적 우정이 쌓여서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돌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협회의 이상이다”라고 하면서, “우리 협회에서 ‘존엄한 죽음권리위원회’를 만든 것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평등한 존재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등한 삶, 존중받는 삶을 서로 만들어 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유 협회장은 “베버리지가 사회복지를 요람에서 노년까지라고 안 하고 왜 ‘무덤까지’라고 정의했는지 의문이었는데, 이번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을 돌아보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끝이 좋으면 과정도 좋게 마련이다.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든 애도하고 기억에 새기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때 아름다운 삶이 된다. 애도받는 죽음, 평등한 죽음, 인간다운 죽음이 권리로서 보장될 때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임기헌 회원이 앞장서서 이런 취지로 공영장례운동을 한다고 해서 발제를 부탁했는데, 저도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감동도 받았다. 우리는 앞서서 먼저 온 미래를 마중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 협회가, 선배시민들이 나선 것인데, 한분 한분이 이처럼 곳곳에서 자기답게 길을 내는 것을 보니 매우 기쁘다”고 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고 격려했다.
한편, 온라인 토론회인 ‘미미공론장’은 “의미 있고, 재미있는 공론장”이라는 뜻이며, 본 협회는 시의성 있는 주제들을 정하여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회원 및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한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은 보통 행사 1주 전쯤 선배시민협회 홈페이지(선배시민.kr)에 게시되는 그달의 주제와 사전신청 안내를 활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