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시민협회 논평: 제28회 노인의 날에 즈음하여
10월 2일은 노인의 날…시혜적 일회성 행사에 그쳐
노인의 존엄한 삶 보장을 위한 노력 더 기울여야
1990년, UN은 매년 10월 1일을 ‘국제 노인의 날’(Interntional Day of Older Persons)로 지정했다. 올해의 국제 노인의 날 주제는 ‘존엄한 고령화: 전 세계 노인을 위한 돌봄과 지원체계 강화의 중요성’이다. 미국은 1988년부터 매년 8월 21일을 선배시민의 날(National Senior Citizens Day)로 정하고, ‘선배시민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면서 이를 기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에 노인의 날을 국가공휴일로 정했으며, 2003년부터는 9월 세 번째 주 월요일을 ‘경로의 날’로 지키고 있다.
한국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1997년에 매년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제정하고, 10월 한 달은 ‘경로의 달’로 정했다. 이 기간 중에 노인복지를 위해 애써온 분들이나 단체에게 표창을 하고, 문화공연, 체육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각 지자체나 민간단체별로 진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혜적인 일회성 행사로는 노인의 날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 노인들이 진정으로 사회적 관심 속에서 공경을 받으려면, 먼저 노인들의 존엄한 삶이 권리의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선배시민협회(Senior Citizens Society)는 선배시민(노인)들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면서 후배시민과 공동체를 돌보는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부 유관 부처와 지자체에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 사항을 요구한다.
첫째, 소득 보장이다. 한국의 선배시민들은 평생을 일했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해 노인이 된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있다. 노인 취업률이 36.8%나 된다(2022년 기준). 이는 미국의 2배, 독일의 5배, 프랑스의 10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한국의 선배시민들이 노후 준비도, 사회임금도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 최저 생활 수준(national minimum)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맞는 65세 이상 모든 선배시민에게 기초연금을 적절하게 지급해야 한다. 또한 최근에 공개된 국민연금 정부 개혁안은 2036년 이후에는 수급액이 줄어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므로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둘째, 건강권 보장이다. 병에 걸려도 모든 것을 다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65세 이상 선배시민에 대한 무상의료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노인들은 여러 가지 만성질환과 노화로 인한 신체적 변화를 겪기 때문에 세심한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 재가 요양 서비스의 접근성이나 질적 문제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 우울증과 고독사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신 건강 서비스 확대와 더불어 지역사회 통합 건강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노인들이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주거권 보장이다. 60세 이상 고령자 중 20%가 무주택이다. 저소득 노인의 상당수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공공 임대주택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저소득층 노인 주거비 보조, 공공임대주택 및 사회주택 공급 확대가 절실하다. 또한, 노인 친화적 주택을 충분히 마련하여 노인의 독립성과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문화적 권리 보장이다. 선배시민들이 사회적 소외를 느끼지 않고,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선배시민들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세대 간 교류를 통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다섯째, 사회적 참여권 보장이다. 사회적 참여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건강한 노후를 영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인이 퇴직 후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선배시민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서 활용할 수 없게 한다. 선배시민들이 장벽 없이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여섯째, 선배시민 조례의 조속한 제정이다. 각 광역 및 기초 지자체는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들이 실제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들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경기도가 지난해 ‘선배시민 지원 조례’를 처음으로 제정했고, 연이어 부천시, 진천군, 구리시, 제주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가 동참했다는 것은 긍적정 신호이다. 선배시민들이 각 지역에서 공동체 단위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이 각 지자체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노인의 날’ 명칭 변경이다.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 ‘노인의 날’ 명칭을 ‘선배시민 권리의 날’로 바꾸길 바란다. 선배시민을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돌봄의 주체로 보고 그에 걸맞은 명칭을 사용해야 기념일의 취지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에 대한 공경은 자선과 시혜가 아니라 권리의 보장에서 나온다. <끝>
2024년 10월 2일